[박수용의 디지털세상] IT전문가가 경험한 'K방역'

입력 2021-08-08 17:47   수정 2021-08-09 00:28

지난달 12일 0시부터 50대를 대상으로 백신 예약을 받는다고 해 필자도 자정까지 기다리다 예약 접속을 시도했다. 예상은 했지만 30분가량 시도에도 전혀 접속이 되지 않았다. 평생 정보기술(IT) 분야에 종사한 필자로서는 질병관리청이 시스템 과부하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접속하니 다행히 접속됐고 백신 예약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IT 시스템 구축 시 동시 접속에 대한 예측을 잘못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잘 알고 있던 필자야 그리 큰 어려움 없이 재접속해 예약했지만 막연한 기대로 밤새 클릭한 주위 분들의 불만과 분노는 심각했다. 대량 동시 접속으로 인한 시스템 과부하도 문제지만 우회 사이트가 있었다느니, 비행기 모드를 통한 새치기 접속 방법이 통했다느니 등 확인할 수는 없는 글이 난무했다. 질병관리청이 좀 더 IT 시스템적 관점에서 전문가 의견을 듣고 준비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 필자가 로봇 소프트웨어 연구 중일 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로봇 연구를 추진하던 박사님이 덴마크 정부의 노인복지담당 부서와 진행 중인 노인들을 위한 로봇 수출 건으로 출장을 간다고 한 적이 있었다. “연구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언제 덴마크까지 마케팅을 하셨냐”고 물었다. 그 박사님은 덴마크 노인 담당 부서에는 신기술을 활용해 노인 복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팀이 있고, 그 팀이 KIST의 로봇이 타임지에 소개된 것을 보고 먼저 연락해 왔다고 말했다. 노인 복지 담당이면 보통 사회복지학 전공의 공무원일 텐데 신기술을 찾고 활용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우리 질병관리청도 대부분 의료 분야나 유사 분야의 공무원과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을 것이다. IT·로봇 등의 신기술을 찾고 적용을 시도할 수 있는 팀이나 인력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정부는 K방역을 자랑하며 각국이 부러워하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가 말하는 K방역의 실체는 무엇일까. 필자와 같이 공학을 하는 사람은 K방역을 지원하는 시스템 같은 것이 있어야 실체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분명 예약 시스템은 아닐 테고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K방역은 그냥 콘셉트나 이미지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K방역의 실체 즉 시스템이 있다면 해외에서도 K방역을 부러워한다니 수출하는 등의 일이 벌어질 만도 한데 그런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작년 가을 필자는 ‘하이브리드 비컨(Hybrid Beacon)’ 센서 기술 기반의 위치추적 기술을 이용해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를 찾아내는 시스템을 개발한 기업을 만났다. 이는 이동통신사의 기지국 데이터나, QR코드, 신용카드 데이터를 이용한 방법보다 월등히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이었다. 이 기업은 이 기술을 이용하면 백화점과 같은 대형 건물에 확진자가 나오면 건물 전체가 폐쇄되거나 모든 이용객이 검사를 받아야 하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면서 면도날같이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고 정부를 설득 중이라고 했다. 시범적용되면 다른 나라에 수출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9개월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정부에서는 시범 적용조차 못하고 있다.

정부는 뉴딜 정책에서 디지털 뉴딜을 강조하면서 코로나 위기를 디지털 사회로의 진입 기회로 삼고자 하는 전략을 발표했다. ‘디지털 강국’ 한국이 정작 방역에서는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실체가 안 보이는 K방역이라는 구호 아래 소상공인과 국민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벤처기업의 기술이 해결책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로봇 기술을 노인 복지에 활용하기 위해 문의하고 노력하는 지구 반대편 덴마크 정부를 보면서 우리나라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얼마나 수용하고 적극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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